“씻는 것도 맡긴다”…호텔에 등장한 ‘인간 세탁기’ 논쟁

고령화·간병 공백 속 ‘편리함’과 ‘불편함’이 교차한 기술

thumbnail -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 크리스탈 호텔 III 스파 시설에 설치된 ‘미래 인간 세탁기’. 자동 세정과 건조 기능을 결합한 이 장비는 Reserva를 통한 예약 서비스로 실제 체험이 가능하다. 출처=레제르바(Reserva)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 크리스탈 호텔 III 스파 시설에 설치된 ‘미래 인간 세탁기’. 자동 세정과 건조 기능을 결합한 이 장비는 Reserva를 통한 예약 서비스로 실제 체험이 가능하다. 출처=레제르바(Reserva)


앉아 있기만 하면 15분 만에 전신 목욕이 끝나는 이른바 ‘인간 세탁기’가 일본에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일부 호텔과 살롱에 실제 설치돼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이 장비를 둘러싼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편리함을 앞세운 현실적 대안이라는 시선과 인간의 일상을 지나치게 자동화한다는 불편함이 동시에 제기된다.

‘미래 인간 세탁기’로 불리는 이 장비는 캡슐형 구조로, 사용자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 자동으로 물이 채워지고 미세 기포를 통해 세정이 이뤄진다. 세정 과정 동안 심전도와 자율신경 반응을 감지하는 센서가 작동해 물줄기 강도와 환경을 조절하고 마무리 단계에서는 자동 건조 기능까지 수행한다. 사용자는 별도의 동작 없이 기계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도입도 이미 시작됐다.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의 한 호텔에서는 해당 장비가 스파 시설에 설치돼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도쿄 이케부쿠로 일대 살롱에서도 도입이 결정됐다. 해외 호텔과 스파 시설에서도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고가 장비임에도 주문 제작에만 수개월이 걸릴 정도로 관심이 높다.

◆ 기술 과시가 아닌, 일본 사회가 만든 결과물

thumbnail - ‘미래 인간 세탁기’ 내부에서 재생되는 영상 화면. 심박수 등 생체 데이터를 분석해 세정 강도와 환경을 자동 조절한다. 출처=슈칸분슌
‘미래 인간 세탁기’ 내부에서 재생되는 영상 화면. 심박수 등 생체 데이터를 분석해 세정 강도와 환경을 자동 조절한다. 출처=슈칸분슌


이 장비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일본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목욕은 일상 가운데 가장 부담스럽고 위험한 행위 중 하나로 꼽히게 됐다. 미끄러짐 사고 위험이 크고 간병 인력이 여러 명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 일부 간병 현장에서는 이미 ‘인간 세탁기’ 개념을 응용한 장비가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중증 장애인을 대상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지 매체들은 이 기계를 ‘미래 기술’이라기보다는 씻는 행위조차 힘들어지는 현실이 만들어낸 결과물로 평가한다. 목욕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이른바 ‘목욕 거부’ 현상이 확산되면서 자동화된 목욕 설비가 하나의 대안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 불편한 자동화인가, 불가피한 선택인가

thumbnail - 일본 가전업체 사이언스가 개발한 ‘미래 인간 세탁기’에 체험자가 앉아 있다. 사용자는 기계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약 15분 만에 전신 목욕을 마칠 수 있다. 출처=슈칸분슌
일본 가전업체 사이언스가 개발한 ‘미래 인간 세탁기’에 체험자가 앉아 있다. 사용자는 기계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약 15분 만에 전신 목욕을 마칠 수 있다. 출처=슈칸분슌


반면 비판적 시선도 만만치 않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 행위마저 기계에 맡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이다. 일부에서는 “편리함이 인간을 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캡슐 안에 몸을 맡긴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씻겨지는 장면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옹호론자들은 시각이 다르다. 이 장비는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하기 어려운 영역을 대신 맡는 설비라는 주장이다. 특히 고령자나 간병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존엄성과 안전을 지키는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이 기계는 세척 성능보다도 사용자의 긴장을 완화하고 사고 위험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논쟁의 핵심은 기술 그 자체보다도 사회가 어디까지 변했는가에 있다. 일본은 이미 ‘씻는 행위’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남겨두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 역시 같은 질문을 언제 마주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인간 세탁기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우리가 일상을 어디까지 기계에 맡길 것인지를 묻고 있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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