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은 제멋대로…러, 마두로 체포에서 ‘세계 질서 변화’ 읽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 러시아가 감지한 ‘강대국 정치’의 귀환

thumbnail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공화당 하원의원 연례 정책 콘퍼런스에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은 미군 작전으로 체포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5일 뉴욕 맨해튼 헬리포트에 도착해 연방법원으로 이동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공화당 하원의원 연례 정책 콘퍼런스에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은 미군 작전으로 체포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5일 뉴욕 맨해튼 헬리포트에 도착해 연방법원으로 이동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군 작전으로 체포되자 충격을 받았으며, 이번 사태를 강대국이 각자의 영향권을 무력으로 관철하는 세계 질서가 되살아난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WP)는 7일(현지시간) “마두로 체포는 러시아가 보기에 미국이라는 강대국 경쟁자가 사실상 제약 없이 행동하고 있음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전했다. WP는 이번 사건이 러시아에 충격을 안기는 동시에 강대국 정치가 다시 국제 무대 전면에 등장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짚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은 러시아 외교·안보 당국에 복잡한 계산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 국제 유가 하락으로 러시아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이 중남미에서 장기 분쟁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이번 사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쏠린 국제적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일정한 전략적 여지를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외교가와 가까운 한 러시아 정치학자는 WP에 “이번 사건은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약화되고 강대국이 영향권을 중심으로 행동하는 질서가 부상하고 있다는 러시아의 인식을 다시 확인해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에는 ‘자기 뒷마당’이 존재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상 몬로 독트린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며 “러시아 역시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만큼 자국 인접 지역에서 영향권을 주장할 명분도 강화됐다”고 말했다. 몬로 독트린은 미주 대륙을 미국의 영향권으로 규정하고 외부 강대국의 개입을 배제하겠다는 미국의 전통적 외교 원칙이다.

이번 작전의 신속성과 정밀성은 크렘린에 뚜렷한 대비를 안겼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 무대에서 압도적인 군사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근 시리아, 이란, 코카서스, 카리브해 등에서 미국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과거 러시아가 후견인 역할을 자처했던 지역에서 주도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thumbnail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주 솔네치노고르스크에 있는 성 게오르기오스 교회에서 열린 정교회 성탄절 예배를 마친 뒤 군인과 가족들과 대화하고 있다. 스푸트니크/로이터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주 솔네치노고르스크에 있는 성 게오르기오스 교회에서 열린 정교회 성탄절 예배를 마친 뒤 군인과 가족들과 대화하고 있다. 스푸트니크/로이터 연합뉴스


WP는 이번 사태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 구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도 전략적 계산의 여지를 넓혀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작전 직전까지 베네수엘라에 ‘전폭적 지지’를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군사 행동을 막지 못했다. 이후 러시아는 국제법 위반을 비판하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았다. 유럽 외교 소식통들은 “이번 사태는 러시아가 약속한 안보 공약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음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미국이 베네수엘라 사태에 깊이 개입해 장기적인 부담을 떠안게 되길 바라는 시각도 나타난다. 친러시아 성향의 정치평론가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많은 이들이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두 번째 베트남이 되길 바라고 있다”며 “미국이 장기전에 빠지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가 숨을 돌릴 공간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thumbnail - 미국 당국이 베네수엘라 인근 국제 해역에서 추적했다고 밝힌 유조선 ‘벨라 1’이 지난해 3월 18일 싱가포르 해협을 항해하는 모습. 로이터 통신은 선박 구조와 자료를 통해 해당 선박을 확인했으며, 미 해안경비대는 베네수엘라 인근에서 유조선을 추적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자료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당국이 베네수엘라 인근 국제 해역에서 추적했다고 밝힌 유조선 ‘벨라 1’이 지난해 3월 18일 싱가포르 해협을 항해하는 모습. 로이터 통신은 선박 구조와 자료를 통해 해당 선박을 확인했으며, 미 해안경비대는 베네수엘라 인근에서 유조선을 추적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자료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경제적 손실도 피하기 어렵다. 베네수엘라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며 러시아는 OPEC 비회원국이지만 OPEC+를 통해 베네수엘라와 유가 정책을 공조해왔다. 러시아는 이와 별도로 베네수엘라에 수십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해왔다. 이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서 석유·가스 개발권을 확보했고 무기 공급과 칼라시니코프 탄약 공장 등 주요 사업에도 깊이 관여해왔다.

러시아 재계에서도 불안이 커지고 있다. 유가와 자원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러시아 재벌 올레그 데리파스카는 미국이 베네수엘라 유전을 장악할 경우 국제 유가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며 “이는 러시아 경제에 중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사태는 베네수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리아, 이란, 아르메니아 등 다른 친러 국가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제재로 러시아의 외교·군사적 여력이 약화되면서, 동맹국들 사이에서는 ‘러시아가 끝까지 지켜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확산하고 있다.

WP는 “마두로 체포는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강대국 정치의 귀환과 러시아 영향력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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