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2조 폭격기를 살린 기술…B-21이 B-2 깨웠다
윤태희 기자
입력 2025 12 09 14:24
수정 2025 12 09 14:24
신형 복합수지·정밀 열제어 기술 첫 적용…차세대 스텔스 정비체계 실전 검증
미국 캘리포니아 팜데일의 미 공군 플랜트 42 상공을 비행 중인 B-2 스텔스 폭격기. 이곳에서 주요 복구 및 정비 작업이 진행됐다. 미국 공군 제공
미 공군이 2021년 활주로 사고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B-2 스텔스 폭격기 ‘스피릿 오브 조지아’를 4년 만에 복원했다. 이번 수리는 단순한 정비가 아니라 차세대 폭격기 B-21 개발 기술을 B-2에 역적용한 첫 사례로 평가받는다.
공군은 지난 3일(현지시간) 발표한 공식 자료에서 “새로운 복합수지와 열제어 기술을 활용해 전면 복구에 성공했다”며 “이번 경험이 향후 B-21 유지·보수에도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착륙 중 사고로 좌측 착륙장치가 붕괴된 미 공군의 B-2 스텔스 폭격기 ‘스피릿 오브 조지아’. 활주로를 벗어나 잔디밭에 멈춰선 기체 주변에서 정비 인력들이 긴급 복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공군 제공
복구에는 2370만 달러(약 348억원)가 투입됐다. 2021년 9월 미주리주 화이트먼 공군기지에서 착륙 중 좌측 착륙장치가 붕괴돼 기체 좌익이 활주로를 긁으며 심하게 손상됐던 이 폭격기는 한때 폐기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이후 미 공군 정비대와 엔지니어팀이 기체를 들어 올려 임시 고정한 뒤, 정밀 계측과 구조 하중 분석을 거쳐 캘리포니아 팜데일의 노스럽 그러먼 정비시설로 옮겼다.
◆ B-21 신소재·‘스카프 리페어’ 기술, B-2 복원에 첫 적용
미 공군의 B-2 스텔스 폭격기 ‘스피릿 오브 조지아’가 야간 정비 작업 중 활주로에 정박해 있다. 2021년 착륙 사고로 손상된 이 기체는 4년간의 복구 과정을 거쳐 지난 11월 작전 상태로 복귀했다. 미국 공군 제공
복원은 4단계에 걸쳐 진행됐다. 1단계에서 손상 부위를 정밀 설계하고 장기 조달 부품을 발주했으며 2단계에서는 복합소재 패널을 시험 제작해 수리 개념을 검증했다. 3단계에서는 날개와 착륙장치 하부 복합 패널 교체가 이뤄졌고 4단계에서는 하중 시험과 비행 안정성 인증을 통해 최종 복구가 완료됐다.
미 캘리포니아 에드워즈 공군기지의 격납고 앞에 주기된 차세대 스텔스 폭격기 B-21 레이더. 뒤편 격납고 안에도 또 다른 B-21 기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 공군 제공
가장 눈길을 끈 것은 B-21 폭격기 개발 과정에서 검증된 신형 복합수지가 처음으로 B-2 수리에 사용된 점이다. 이 수지는 고온·고압 설비(오토클레이브) 없이도 외부 환경에서 경화가 가능해 기존보다 수개월 빠른 수리가 가능했다. 공군은 “새 소재는 향후 스텔스 기체 유지보수의 효율성을 크게 높일 것”이라며 “복합 구조물의 현장 수리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복원에는 또 하나의 첨단 공법인 ‘스카프 리페어’(Scarf Repair) 기술이 적용됐다. 이는 복합소재 층의 결 방향을 유지한 채 외피를 가늘게 깎아내어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표면 돌출 없이 스텔스 형상을 복원할 수 있는 고난도 기술이다. 특히 열처리 과정에서 인접 구조물이 손상되지 않도록 맞춤형 열분포 장비와 절연 시스템이 투입됐다. 공군 측은 “밀폐된 공간에서의 정밀 온도 제어가 최대 난관이었으나 새로운 장비와 절차로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 “B-21 유지체계까지 진화”…차세대 스텔스 정비 실험대
시험비행 중인 미 공군 차세대 스텔스 폭격기 B-21 레이더의 기체 하부 모습. 두 번째 시제기가 처음으로 비행에 나서는 장면이 포착됐다. 미 공군 제공
이번 복구는 단순히 한 대의 폭격기를 되살린 것을 넘어 미 공군의 스텔스 유지·보수 기술이 새로운 단계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B-2 프로그램 담당자인 제이슨 셜리 대령은 “이번 프로젝트는 복합소재 구조물 수리의 한계를 시험한 결과였다”며 “B-21과 이후 스텔스 자산 유지·정비에 동일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스럽 그러먼 역시 “B-21 개발에서 축적한 복합소재 분석과 열처리 기술을 B-2 복구에 접목했다”며 “정비 속도와 비용 효율성이 모두 향상됐다”고 밝혔다. 이번 복원에서 사용된 ‘도너 부품’ 일부는 과거 B-2 시험기체에서 떼어낸 복합 패널로, 새로 제작할 경우보다 비용을 약 30% 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B-2는 총 21대만 생산됐으며 이 중 2대가 이미 사고로 소실됐다. 한 대를 잃으면 대당 14억 달러(약 2조 590억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미 공군은 “모든 기체를 작전 가능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전략적 필수 과제”라고 강조했다.
◆ 스텔스 폭격기의 ‘기술적 부활’이 남긴 의미
야간 격납고 앞에 세워진 미 공군의 B-2 스텔스 폭격기 ‘스피릿 오브 조지아’. 4년간의 복구 과정을 마친 이 기체는 최근 작전 상태로 복귀했다. 미 공군 제공
전문가들은 이번 복원이 ‘B-2의 재생이자 B-21의 전초전’이라고 평가한다. 미국의 핵 억제력 3축 중 ‘공중 투발 능력’을 담당하는 스텔스 폭격기 전력이, 차세대 기술로 다시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 공군은 향후 B-21의 실전 배치와 함께 B-2에도 동일 소재와 장비를 확대 적용해, 유지비 절감과 작전 지속시간 확대를 목표로 한다. 공군 관계자는 “이번 사례는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기술 실증이었다”며 “스텔스 자산의 수명과 전투준비태세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윤태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