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를 바라보는 이상한 괴물 [으른들의 미술사]
입력 2026 10 21 16:55
수정 2026 10 21 16:55
아르놀트 뵈클린, ‘물고기를 바라보는 켄타우로스’, 1878, 캔버스에 템페라, 43 x 70㎝, 취리히 쿤스트하우스
●물고기를 구경하는 반인반마
스위스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1827~1901)의 ‘물고기를 바라보는 켄타우로스’(1878)는 제목부터 이상하다. 켄타우로스라면 그리스 신화 속 영웅들과 싸우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이 그림의 주인공은 아무런 사건도 일으키지 않는다. 물가에 누워 물속을 들여다볼 뿐이다. 인간의 상체와 말의 몸을 지닌 거대한 존재가 작은 물고기들을 구경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묘하게 평화롭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켄타우로스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괴물이다. 그러나 그림 속에서는 오히려 물고기와 물가의 풍경이 자연스럽고, 그 풍경에 끼어든 켄타우로스가 조금 낯설 뿐이다. 뵈클린은 신화 속 존재를 현실의 풍경에 불러내고, 그 존재가 일상적인 행동을 하는 장면을 통해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꾼다.
●반인반수, 구분하는 법
서양 미술의 도상에서 인간과 동물이 결합한 반인반수 그룹에는 네 종류가 있다. 넷 가운데 켄타우로스와 케이론은 인간과 말이, 사티로스와 판은 인간과 염소가 결합된 모습이다. 사티로스는 염소 귀나 뿔, 꼬리와 다리 등을 지녔다. 다만 시대와 작품에 따라 사티로스도 말의 꼬리를 지니거나 켄타우로스와 비슷한 동물적 특징을 보일 수 있다.
켄타우로스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상체와 말의 몸통이 결합한 모습이다. 켄타우로스는 흔히 거칠고 충동적인 성격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지만, 모두 야만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켄타우로스 가운데 지적이고 철학적인 켄타우로스는 케이론이라 불린다. 케이론은 의술과 음악, 사냥에 능통한 현자로, 아킬레우스와 아스클레피오스 등 여러 영웅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대부분의 켄타우로스는 남의 결혼식에서 술에 취해 신부를 납치하거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 여러 곳에서 충돌을 일으키며 민폐를 끼치는 종족이다. 그래서 켄타우로스는 인간의 이성과 동물적 본능이 공존하는 존재로 해석되곤 한다. 그러나 뵈클린의 그림에서는 이러한 대립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물고기를 바라보는 켄타우로스는 위협적인 괴물이라기보다 자연 속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친근한 이웃처럼 보인다.
이처럼 반인반수는 단순히 기괴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괴물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 문명과 본능, 질서와 혼돈 사이의 경계를 드러내는 신화적 존재다. 뵈클린의 그림에서 중요한 점은 이 경계가 위협이나 충돌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켄타우로스는 자신의 동물적 본성을 과시하지도, 인간 세계에 들어오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홀로 물고기를 바라본다.
●신화를 현실처럼 그린 화가, 뵈클린
1827년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난 뵈클린은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한 뒤 1850년 이탈리아 로마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접한 고대 신화와 이탈리아의 풍경은 그의 예술 세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그는 현실의 자연을 충실하게 관찰하면서도 그 안에 신화 속 인물과 상상의 생명체를 끌어들였다. 그의 그림에서는 풍경이 단순한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풍경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뵈클린은 생전에 독일어권 미술계에서 큰 명성을 누렸으며, 사후에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신화적 존재를 이상화된 고전의 주인공으로만 그리지 않고, 때로는 익살스럽고 때로는 불편할 만큼 생생한 존재로 되살렸다는 점이 그의 독창적 특징이다.
●괴물에게도 소확행이 있다
‘물고기를 바라보는 켄타우로스’가 이상한 이유는 괴물이 너무나 평범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화 속 켄타우로스에게 영웅적인 모험이나 무시무시한 사건을 기대하지만, 뵈클린은 그런 기대를 비켜 간다. 인간보다 훨씬 강해 보이는 몸을 가진 켄타우로스가 작은 물고기 앞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힘이 센 괴물 켄타우로스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든다. 마치 영화 속 마동석 배우가 한가하게 거울을 보는 모습과 같은 충격을 준다.
이 그림은 켄타우로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물고기가 왜 그토록 흥미로운지 설명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괴물이라고 부르는 존재도 자신만의 관심사와 소확행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속의 작은 생명을 바라보는 켄타우로스의 시선 끝에서, 낯선 존재를 바라보던 우리의 시선도 조금씩 달라진다.
이미경 연세대 연구교수·미술사학자 bostonmural@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