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죽음을 예언한 새 [으른들의 미술사]

thumbnail - 카렐 파브리티위스, ‘황금방울새’, 1654, 패널에 유채, 33.5x22.8㎝,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카렐 파브리티위스, ‘황금방울새’, 1654, 패널에 유채, 33.5x22.8㎝,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발이 묶인 새

작은 새 한 마리가 흰 벽 앞에 앉아 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새의 한쪽 발에 쇠사슬이 묶여 있다. 새는 날아가지 못하고 작은 모이통 위에 가만히 앉아 있다. 네덜란드 화가 카렐 파브리티위스(1622~1654)가 그린 ‘황금방울새’(1654)는 화가 이름부터 작품까지 낯설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왜 굳이 묶어 놓았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황금방울새를 애완조로 기르는 일은 흔했다. 특히 황금방울새는 작은 양동이를 이용해 물을 길어 올리는 재주를 부려 인기가 높았다. 그래서 네덜란드어로 ‘물을 긷는 새’라는 뜻의 이름까지 얻었다.

●눈을 속인 그림

그런데 이 그림에서 정말 놀라운 것은 새가 아니라 새를 그린 방법이다. 파브리티위스는 새의 그림자를 그려 실제 새가 벽에 앉아 있는 것처럼 그렸다. 새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점에서 그렸기 때문에 실제 새가 벽에 앉아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미술에서는 이런 눈속임을 ‘트롱프뢰유’, 곧 ‘눈속임 기법’이라고 부른다.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는 파브리티위스가 이 작품을 실제 벽에 걸어 놓고 관객이 진짜 새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그림을 현대의 과학기술로 들여다본 결과, 파브리티위스는 배경을 실제 회벽처럼 보이도록 일부러 물감을 벗겨 실제 벽처럼 보이게 했다. 받침대 오른쪽에 페인트가 벗겨진 회벽 모습은 실제 흰색 바탕에서 물감을 벗겨 낸 모습이다.

●32세에 멈춰버린 화가

파브리티위스는 미술사에서 유난히 미스터리한 화가다. 남아 있는 작품은 고작 12점 안팎이고, 그의 생애에 관한 기록도 많지 않다. 그가 1641~1643년 무렵 암스테르담에서 렘브란트에게 그림을 배운 제자라는 사실 외엔 이렇다 할 정보가 없다. 그는 초기에 렘브란트의 어두운 색채와 극적인 명암, 힘찬 붓질을 모방하지만, 델프트로 옮긴 1650년 이후에는 밝은색과 섬세한 빛, 공간과 착시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키며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갔다. 독특한 화풍 때문에 그가 훗날 페르메이르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파브리티위스는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의 공백을 메울 독특한 이력의 화가인 셈이다.

그런데 파브리티위스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는 순간 끝나버렸다. 1654년 10월 12일 델프트에서 일어난 화약고 폭발 사고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다. 폭발 사고 당시 파브리티위스의 작업실도 폭발 현장 가까이에 있어 엄청난 굉음과 함께 그의 작업실도 무너졌다. 파브리티위스는 폭발 잔해 속에서 구조되었지만 심각한 부상으로 32세의 나이에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가 남긴 열두 점 남짓한 작품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묶여 있는 새와 사라진 화가

그래서 이 작은 새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감정이 생긴다. 쇠사슬은 짧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날개는 있지만 날아갈 수 없다. 32세에 날갯짓을 멈춘 화가 역시 더 이상 세상에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날아갈 수 없는 새와 요절한 젊은 화가의 같은 운명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새의 쇠사슬을 파브리티위스 자신의 운명을 예고한 상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화가의 이른 죽음을 알고 난 뒤에는 묘하게도 이 작은 새가 화가의 모습으로 비친다. 날아가고 싶은 새와 폭발 사고로 한순간에 사라진 화가 파브리티위스는 같은 운명을 타고난 운명공동체처럼 보인다. 그가 남긴 것은 고작 작은 새 한 마리였지만, 그 새는 지금도 1654년의 파브리티위스의 벽에 묶여 있다.

너무 일찍 사라진 화가는 ​못내 아쉬운 ‘만약에’를 남겼다. 만약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렘브란트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그림을 그린 그의 붓끝은 어디까지 나아갔을까. 아니면 페르메이르에게 어떤 말을 전했을까.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없다. 그래서 파브리티위스의 짧은 생애와 작은 새 그림은 오래도록 우리에게 아쉬운 상상을 남긴다.

이미경 연세대 연구교수·미술사학자 bostonmura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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